チョン・ウソンのインスタグラム(tojws) - 6月19日 09時30分
지난 해 7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1분마다 25명의 사람이 모든 것을 -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 남겨둔 채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피신했습니다.
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를 필요로 합니다. 이번 난민의 날 난민과 함께 걸어주세요.
More than 70 million people were forced to flee in 2018. Every minute, 25 people fled from conflicts and violence, forced to leave everything - often their loving family members - behind.
@Refugees around the world need our solidarity more than ever. Please join me and take a #StepWithRefugees this #WorldRefugeeDay - go to www.refugeeday.org to find out more.
#WithRefugees #RefugeesWelcome #UNHCR #Solidarity
[BIHAKUEN]UVシールド(UVShield)
kyunge8
@humorous0420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레바논 유입과 갈등 전개 과정
1943년, 프랑스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레바논 '공화국'을 건설했다. 공화국은 가톨릭과 이슬람 그 어느 것도 공식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레바논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마론파 기독교,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인구 분포에 따라 대통령직·국무총리직·국회의장직을 설정해 각 파가 동등하게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인정된 뒤부터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량 발생했다. 요르단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 남부로 유입됐고, 이들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 활동을 벌였다. 레바논 정부가 인도주의적 정책을 펴서 난민을 수용한 건 아니었다. 레바논은 각 종파마다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었지만, 정부군은 난민 유입을 막을 만한 능력이 없었다.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팔레스타인 민병대를 곱게 보지 않았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레바논을 기점으로 한 단체였다.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와 PLO 사이의 싸움이 주를 이뤘다. 인근 아랍 국가들은 PLO를, 이스라엘은 팔랑헤를 지원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멈추고 발발하기를 반복했다. 무슬림 민병대가 기독교인을 죽이고, 반대로 기독교 민병대는 무슬림을 죽였다.
일명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 학살'. 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팔랑헤는 베이루트시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방문해 여성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 사건으로 PLO는 난민 3000여 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희생자 3000명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900명 가까이 희생됐다고 발표할 정도로 학살 규모가 컸다.
레바논 인구 중 약 45%를 차지하는 '마론파' 기독교. 레바논은 중동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슬람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하지 않은 나라다. 지금도 공화국 형태를 유지하며 각 종파 간 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 레비논계 난민출신들과의 유혈사태 (2005년)
2005년 12월 4일, 호주 크로눌라 해변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호주 수상 안전요원들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라디오 방송국에선 이슬람인들을 호주땅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방송을 보냈고 이에 반발한 레바논인들이 12월 11일, 길가에 주차해 놓은 차량 100여대를 부셔버리고 불태워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레바논인들은 12월 12일에는 호주에 거주하는 레바논인들 휴대전화에 “모든 레바논인들이여 함께 일어나 호주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레바논 왕국을 세우자” 라는 메세지가 호주에 거주하는 20만명의 레바논인들 휴대전화에 일일이 전달됨으로써 호주 레바논 폭동은 시작되었다.
흥분하여 거리로 뛰쳐나온 레바논 이민자들은 2005년 12월 13일,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장에 난입하여 교인들을 폭행한 뒤, 각종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폭동으로 인해 교회 3채가 불에 탔으며 수십억의 재산피해가 일어났다.
레바논 이민자들은 시드니 시내를 떼지어 몰려다니며 지나가는 호주인들을 폭행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분노한 ‘호주 애국 청년단’ 과 ‘One Nation Party’ 라는 호주 단체들은 모든 이슬람인들에게 보복 공격을 가하면서 맞받아 치는 그야말로 인종전쟁이 발발 하였다. “지난 70년대 말콤 프레이저 총리(자유당)가 난민 재정착 이민정책에서 일부 소수민족그룹의 유입을 허용한 것은 실수였다” - 피터 더튼 호주 이민장관의 의회발언, 2016. 11.22.
2016년 2월 호주 ABC 방송은 “내각 자료에서 정부가 레바논 커뮤니티를 강력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 내각 자료에는 “호주 거주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Australian Sunni extremists) 중 레바논 커뮤니티가 가장 두드러진 소수민족그룹”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 “1975~1990년 사이 레바논 내전 여파로 호주에 정착한 난민 유입 후 호주는 교훈을 얻었다. 수니파 레바논 커뮤니티와 호주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볼 때 지역사회 안전과 국가 안보 위험이 호주사회 동화 실패와 연관됐다”고 언급했다.
kyunge8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레바논 유입과 갈등 전개 과정
1943년, 프랑스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레바논 '공화국'을 건설했다. 공화국은 가톨릭과 이슬람 그 어느 것도 공식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레바논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마론파 기독교,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인구 분포에 따라 대통령직·국무총리직·국회의장직을 설정해 각 파가 동등하게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인정된 뒤부터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량 발생했다. 요르단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 남부로 유입됐고, 이들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 활동을 벌였다. 레바논 정부가 인도주의적 정책을 펴서 난민을 수용한 건 아니었다. 레바논은 각 종파마다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었지만, 정부군은 난민 유입을 막을 만한 능력이 없었다.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팔레스타인 민병대를 곱게 보지 않았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레바논을 기점으로 한 단체였다.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와 PLO 사이의 싸움이 주를 이뤘다. 인근 아랍 국가들은 PLO를, 이스라엘은 팔랑헤를 지원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멈추고 발발하기를 반복했다. 무슬림 민병대가 기독교인을 죽이고, 반대로 기독교 민병대는 무슬림을 죽였다.
일명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 학살'. 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팔랑헤는 베이루트시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방문해 여성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 사건으로 PLO는 난민 3000여 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희생자 3000명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900명 가까이 희생됐다고 발표할 정도로 학살 규모가 컸다.
레바논 인구 중 약 45%를 차지하는 '마론파' 기독교. 레바논은 중동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슬람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하지 않은 나라다. 지금도 공화국 형태를 유지하며 각 종파 간 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 레비논계 난민출신들과의 유혈사태 (2005년)
2005년 12월 4일, 호주 크로눌라 해변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호주 수상 안전요원들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라디오 방송국에선 이슬람인들을 호주땅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방송을 보냈고 이에 반발한 레바논인들이 12월 11일, 길가에 주차해 놓은 차량 100여대를 부셔버리고 불태워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레바논인들은 12월 12일에는 호주에 거주하는 레바논인들 휴대전화에 “모든 레바논인들이여 함께 일어나 호주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레바논 왕국을 세우자” 라는 메세지가 호주에 거주하는 20만명의 레바논인들 휴대전화에 일일이 전달됨으로써 호주 레바논 폭동은 시작되었다.
흥분하여 거리로 뛰쳐나온 레바논 이민자들은 2005년 12월 13일,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장에 난입하여 교인들을 폭행한 뒤, 각종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폭동으로 인해 교회 3채가 불에 탔으며 수십억의 재산피해가 일어났다.
레바논 이민자들은 시드니 시내를 떼지어 몰려다니며 지나가는 호주인들을 폭행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분노한 ‘호주 애국 청년단’ 과 ‘One Nation Party’ 라는 호주 단체들은 모든 이슬람인들에게 보복 공격을 가하면서 맞받아 치는 그야말로 인종전쟁이 발발 하였다. “지난 70년대 말콤 프레이저 총리(자유당)가 난민 재정착 이민정책에서 일부 소수민족그룹의 유입을 허용한 것은 실수였다” - 피터 더튼 호주 이민장관의 의회발언, 2016. 11.22.
2016년 2월 호주 ABC 방송은 “내각 자료에서 정부가 레바논 커뮤니티를 강력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 내각 자료에는 “호주 거주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Australian Sunni extremists) 중 레바논 커뮤니티가 가장 두드러진 소수민족그룹”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 “1975~1990년 사이 레바논 내전 여파로 호주에 정착한 난민 유입 후 호주는 교훈을 얻었다. 수니파 레바논 커뮤니티와 호주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볼 때 지역사회 안전과 국가 안보 위험이 호주사회 동화 실패와 연관됐다”고 언급했다.
kyunge8
난민에 대한 유럽의 대응, 대책은 무엇인가?
① 난민 수용과 거부 사이 - 유럽연합(EU)은 더블린 조약에 따라 처음 난민이 발을 디딘 곳에서 망명 신청을 하도록 규정한다.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서 가까운 그리스와 이탈리아, 헝가리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은 밀려오는 난민들로 곤욕을 치러오면서 더블린조약이 불공정하다며 다른 EU 국가들도 난민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 한편 솅겐조약을 이용해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망명 신청한 후 독일로 넘어간 난민이 독일 내 난민의 75%에 달한다. 독일은 2018년 6월, 난민을 이들이 처음 도착했던 국가로 송환하기로 14개 유럽국들과 합의했다. * 더블린 조약 :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의 망명처리 원칙을 규정한 조약. 핵심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입국한 국가에서 망명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만일 다른 국가로 이동해 난민 신청을 하면 처음 입국한 국가로 이송하게끔 규정하고 있다. 1997년 발효. 이 조약은 유럽 내 일부국가들에 불공평한 난민집중 상황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난민 강제할당제 : EU는 최근 몇 년 새 중동·아프리카 난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들자 2015년부터 각 회원국이 일정한 수의 난민을 의무적으로 수용·재정착시키도록 하는 강제할당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4개국은 의무적인 난민 할당에 반대하며 아예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② 국경 통제 - 2015년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 국경 통제 조치에 들어갔다. 헝가리는 초강경 이민법을 발효시켰으며, 세르비아와의 국경 외에도 루마니아와의 국경 또한 통제에 들어갔다. - 2016년 스웨덴은 덴마크와의, 덴마크는 독일과의 국경 통제를 시작했다.
- 2018년 6월20일 헝가리 의회가 반난민 정책을 묶은 ‘스톱 소로스(STOP SOROS)’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새 법률은 난민 지위를 신청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불법 이민자가 헝가리 내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인 및 단체 관계자들을 최고 징역 1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 2017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아프리카에서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들은 니제르와 차드에서 사전심사하는 절차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내주 지중해 난민 루트 폐쇄 논의
독일은 난민 포용정책을 접고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난민 송환을 위한 수용시설(transit center)을 만들기로 했다. 유럽연합(EU) 다른 회원국에서 난민 지위 인정 신청을 한 난민들이 독일에 같은 신청을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돌려보내기 위한 시설이다. - 연합 2018. 7. 5.
③ 反난민 정권의 부상
이탈리아 포퓰리스트 정부 출범…오성운동·동맹 연립내각, 강경파 이탈리아 내무 "유럽 내 '反난민
연합' 만들자" <브렉시트> - 반난민·이민 정서 표출의 결과.
유럽 심상찮은 反난민 후폭풍…슬로베니아 총선도 우파 승리.
헝가리총선 "반이민·반난민" 여당 재집권…오르반 총리 4선성공.
'반난민' 오스트리아, EU에 북아프리카 국경통제 촉구.
kyunge8
@humorous0420 ② 난민에 의한 폭동, 테러 현황 - 2017년 4월 스웨덴에서 발생한 트럭 돌진 테러를 일으킨 우즈베키스탄 출신 범인은 망명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이에 대한 불만을 테러로 표현했다. - 2016년 스웨덴의 난민 시설에서 일하던 22살 여직원이 15살 난민 소년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나면서 난민 관련 범죄가 10배 증가했다. <파리 테러> "난민 위장 테러 현실화"…EU 난민정책 시험대에. AFP통신 등에 따르면 파리 테러 현장에서 발견된 여권과 지문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 중 2명이 그리스에서 난민 등록을 한 후 프랑스로 흘러든 것으로 확인됐다. - 연합 2015.15.
- 독일 쾰른 집단 성폭력 : 2015년 12월 31일에서 2016년 새해 첫날로 넘어가는 시간, 쾰른 중앙역 광장에 모여 있던 남성 1000명가량이 이곳과 대성당 주변에서 연말 축제를 즐기러 나온 여성들을 상대로 수십 차례 성폭력과 강도 행각을 벌였다. - 독일 곳곳 '집단 성폭력'…"쾰른사태 후 이주민 히스테리" - 연합 2016. 1. 9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 철근을 실은 19톤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스카니아 R450 트랙터가 시장의 약 60~80m를 돌진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48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리즘 가운데 단일 사건 사상 최대의 사상자 수를 낸 사건이다. -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 바이에른의 열차 안에서 17세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남성이 도끼와 흉기를 휘둘러, 최소 21명이 부상을 당하고 이중 5명이 중태에 빠졌다.
- 2016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로이틀링겐에서 시리아 출신 난민(21)이 마체테를 휘둘러 여성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 독일서 난민 신청 거부된 시리아 청년, 노천 음악축제서 자살폭탄 테러…12명 부상 - VOA, 2016. 7. 25. - 2017년 독일 망명을 거부당한 아랍 에미리트에서 온 20대 팔레스타인인 남성이함부르크에서 흉기 난동,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 독일서 난민들 폭동…150여명의 난민들이 경찰 위협해 연행되던 국외 추방 대상자 난민의 도주를 도왔다. - 연합 2018. 5. 4 - 독일은 하루에 10번꼴로 난민혐오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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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난민에 의한 폭동, 테러 현황 - 2017년 4월 스웨덴에서 발생한 트럭 돌진 테러를 일으킨 우즈베키스탄 출신 범인은 망명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이에 대한 불만을 테러로 표현했다. - 2016년 스웨덴의 난민 시설에서 일하던 22살 여직원이 15살 난민 소년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나면서 난민 관련 범죄가 10배 증가했다. <파리 테러> "난민 위장 테러 현실화"…EU 난민정책 시험대에. AFP통신 등에 따르면 파리 테러 현장에서 발견된 여권과 지문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 중 2명이 그리스에서 난민 등록을 한 후 프랑스로 흘러든 것으로 확인됐다. - 연합 2015.15.
독일 쾰른 집단 성폭력 : 2015년 12월 31일에서 2016년 새해 첫날로 넘어가는 시간, 쾰른 중앙역 광장에 모여 있던 남성 1000명가량이 이곳과 대성당 주변에서 연말 축제를 즐기러 나온 여성들을 상대로 수십 차례 성폭력과 강도 행각을 벌였다. - 독일 곳곳 '집단 성폭력'…"쾰른사태 후 이주민 히스테리" - 연합 2016. 1. 9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 철근을 실은 19톤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스카니아 R450 트랙터가 시장의 약 60~80m를 돌진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48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리즘 가운데 단일 사건 사상 최대의 사상자 수를 낸 사건이다. -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 바이에른의 열차 안에서 17세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남성이 도끼와 흉기를 휘둘러, 최소 21명이 부상을 당하고 이중 5명이 중태에 빠졌다.
- 2016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로이틀링겐에서 시리아 출신 난민(21)이 마체테를 휘둘러 여성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 독일서 난민 신청 거부된 시리아 청년, 노천 음악축제서 자살폭탄 테러…12명 부상 - VOA, 2016. 7. 25. - 2017년 독일 망명을 거부당한 아랍 에미리트에서 온 20대 팔레스타인인 남성이함부르크에서 흉기 난동,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 독일서 난민들 폭동…150여명의 난민들이 경찰 위협해 연행되던 국외 추방 대상자 난민의 도주를 도왔다. - 연합 2018. 5. 4 - 독일은 하루에 10번꼴로 난민혐오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kyunge8
@humorous0420 "우리 백성이 먼저다" 세종대왕님이 이슬람에 대처한 방법.
예조는 “회회교도는 의관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 때 회회도의 기도하는 의식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라고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그때(세종 때)까지 이슬람 사람들은 이슬람 복식을 그대로 고수했고, 대조회(모든 벼슬아치들이 다 모여 임금을 알현하는 것) 때에도 이슬람 복식과 기도하는 의식을 그대로 고수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슬람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그대로 고수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슬람 사람들과 결혼하기를 꺼리게 됐다. 이에 세종 때에 이슬람 복식과 의식 등을 폐하면서 이슬람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동화해서 살게 만든 것이다.
다른 문화를 배척해서 그 문화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과 동화돼서 하나로 잘살게 하기 위해 이슬람 복식과 의식을 폐지한 세종대왕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즉, 세종대왕은 조선의 문화와 이슬람의 문화가 하나로 융합되게 만드는 융화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임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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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9
ユク・ジダムさんがフォロー